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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이민 2세’의 성장기


인민화보

ebet2017-09-26      인민화보

차오원징 사진/ 천젠(陳建)

스스로를 전형적인 선전(深圳) ‘이민 2세’라고 말하는 차오원징(曹文靜)은 선전에서 약 1000km 떨어진 후베이(湖北)성 황스(黃石)에 살다가 2000년 부모님을 따라 선전으로 왔다. 선전의 활력과 기회가 부모님의 발길을 이끌었고, 어린 원징은 그렇게 선전과 인연을 맺게 됐다. 

정보가 넘치는 선전은 원징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원징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전의 한 직업기술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수질검사센터의 화학실험연구원이 됐다. 10년 뒤 센터의 중간관리자가 됐지만 그는 돌연 이직을 선택했다. 틀에 박힌 생활이 무미건조했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남들과는 다른 성장의 길을 걷고 싶었다. 이런 것은 ‘선전런(深圳人, 선전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선전런’ 만의 특징이었다. 

꿈을 찾아서
원징은 중학교 1학년 때 선전시 빈허(濱河)중학교로 전학했다. 당시 전교에서 푸퉁화(普通話, 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원징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광둥화(廣東話, 광둥어)를 썼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원징 주변으로 모여들어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에 대해 묻곤 했다. “친구들은 호기심이 넘쳤고 또 친절했다”고 원징은 그 시절을 회상했다.
고교 졸업 이후 선전직업기술학교에 입학한 원징은 산업 분석 및 검사를 전공했고, 졸업한 뒤 선전시수무그룹(水務集團)에 입사해 수질검사센터 화학실험연구원이 되었다. 

10년 뒤, 원징은 사무실 주임까지 승진했지만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주임이 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미래와 미지의 세계를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직을 하는 데 있어서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원징의 부모님은 선전에 오기 전에는 후베이 황스에서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비교적 안정적인 거처와 커뮤니티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셨던 것 같다.

두 분 모두 1960년 생이시고 선전에 왔을 때 벌써 마흔이 가까운 나이였다. 그때 그렇게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부모님이 선전을 선택하신 것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선전에는 기회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차오산(潮汕)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들의 창업정신,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정신은 정말로 놀랍다.” 

‘차오산 사람(중국 동남쪽 연해지역의 산터우(汕頭)·차오저우(潮州) 등지에 사는 주민. 사업수완이 좋기로 유명하다)’은 원징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던 분으로, 원징은 그를 ‘천(陳) 삼촌’이라고 부른다. ‘천 삼촌’은 16살 때 숟가락만 들고 선전으로 향했다. “삼촌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천 삼촌은 훗날 호텔을 지었고 마침내는 부동산 사업을 하게 됐다. 이런 사례는 선전에서 아주 흔하다. 모두들 고생을 달가워하는 ‘인내형’의 사람들이고,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원징이 천 삼촌을 존경하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큰 성공을 이룬 천 삼촌이 60세 때 돌연 자신의 사업을 전부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천 리 밖의 윈난(雲南)성 시솽반나(西雙版納)로 가서 산에 차나무를 심으며 살고있기 때문이다. 사실 차나무를 심고 한 잔의 좋은 차를 우려내는 것은 천 삼촌 일생의 꿈이었다.  

원징은 천 삼촌의 결정에 큰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전에는 천 삼촌처럼 마음의 소리를 경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용감하게 개척해나가는 기백 같은 것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슴 속에 꿈이 있고,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결심을 한다는 것이다.”

해변가에 펜션을 열다 
회사를 떠난 원징은 시장조사를 거쳐 숙박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선전 해변가 관광지인 자오창웨이(較場尾)에 ‘옌위(巖嶼)’라는 이름의 펜션을 열었다. 

400여 ㎡ 면적의 ‘옌위’는 10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블랙과 화이트를 중심으로 한 인테리어로 모던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국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자연스러움, 우아함, 편안함을 살렸다. 30-40대 부모의 가족단위나 50-60대 전문직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선전에는 다른 곳과 크게 비교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서비스업종의 창업자들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다는 것이다.” 원징이 만나는 고객들은 언제나 예의 바른 모습이다. 가져온 술을 다 마시지 못하면, 설사 아무리 비싼 와인이라 할지라도 원징에게 주고 간다. “이렇게 친절한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런 행운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기자가 취재를 갔던 그날 오후, 선전시 부시장 중 한 명이 ‘옌위’를 시찰했다. 부시장이 시찰을 마치고 떠난 후 원징은 “부시장이 ‘옌위’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다”면서 “다만 현지의 상가들이 생태권에 관심을 갖고 환경보호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다펑(大鵬)신구(新區) 관광구역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환(環)다펑반도 수륙 코스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등을 구했다는 게 원징의 설명이었다.  

원징은 다펑신구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점쳤다. 다펑신구 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화차오청(華僑城)이 들어오면서 숙박업소들이 소재해있는 자오창웨이 전체가 5A급 풍경구(관광지)로 조성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 있으면 자연스럽게 햇빛을 피할 수 있다.”

포용적이고 문명적인 분위기 
“선전에서 자란 친구들이 선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창업을 하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창업을 한다면 역시 선전을 선택할 것이다.”

선전에는 창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구상만 있다면 무엇이든 실천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이곳에 펜션을 지었다. 2호점을 열고 싶다고 하면 투자자가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이 펜션을 본 사람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 테니까 말이다.” 

자오웨이창의 원징은 자신이 혼자라고 느낀 적이 없다.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펜션의 주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막 개업했을 때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테이블과 의자 놓는 것도 도와주었고 포장도 같이 뜯었다. 정말로 자기 일처럼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었다. 얼마 뒤에 ‘지우링허우(90後, 90년대 이후 출생자)’ 아가씨 두 명이 펜션을 오픈했는데, 언니 동생하며 지내게 됐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서로 돌아가며 도와준다. 모두들 친절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는 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들이 많다. 아는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원징의 눈에 비친 선전은 장점이 많은 곳이다. 먼저 지역 차별이 없다. 선전에 온 사람 누구나 ‘선전런’일 만큼 포용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또한 문명수준이 높다. 운전자는 행인에게 양보하고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순서를 잘 지킨다. 

“선전 사람들은 모두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교통법규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건데, 잘 지키면 좋지만 안 지키기 시작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전에는 공감대 같은 것이 있다. 누가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설명할 필요 없이 양심대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너는데 쓰레기차를 모는 아저씨의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는 곧장 달려가 떨어진 물건을 주워 그 아저씨에게 갖다줄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일은 이 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선전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곳이다. 나는 정말로 자랑스럽다.” 

원징은 친구 범위가 넓다. 10년 전, 자신보다 10살이 더 많은 친구들을 따라 사진을 찍으면서 이 친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친구들은 정말로 대단하다. 평생 사진 찍는 것, 이 한 가지 일만 했다. 친구들은 이제 50살이 넘었다. 시충(溪湧)의 농가(農家)에서 살며 사진을 인화한다. 담배를 피우고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친구들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나도 조금은 이상주의자다. 아름다운 것에 충동을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다.” 

부모님의 친구 천 삼촌도 빼놓을 수 없다. 원징에게 천 삼촌은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천 삼촌은 차를 마시면서 찻잎을 볶은 사람의 성격을 알아 맞춘다. 성미가 급한 사람이 볶은 찻잎은 다른 맛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화 수준은 배움의 정도와 관계가 있지만 문화적 소양은 여러 방식으로 길러진다. 이 부분에 있어 원징은 남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32세의 원징은 그 말투에서 교양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활발하고 쾌활한 성격이지만 가벼워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면서도 자기 식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많이 배운 것만으로는 이렇게 될 수 없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원징은 기품 있으면서도 친근한 분위기를 갖고있다.  

창업에 성공한 부모를 둔 선전의 다른 이민 2세들처럼 원징 또한 선전의 풍요로움과 문명을 크게 느꼈고 규칙을 준수한다. 또한,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포용할 줄 안다. 부모와 선배들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창업의 경험은 이민 2세들로 하여금 용감하게 선택하고 더욱 발전해 나가도록 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지만, 성공한 친구들과의 교류는 이민 2세들로 하여금 포기를 배우고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게 했다. 은혜를 알고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며 생활을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은 원징과 같은 선전 이민 2세들의 미덕이자 본분이라 할 수 있다. 



ebet글|리샤 ( lixia), 인민화보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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