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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친척’들의 부자 되기


ebet2018-09-17      

펑두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관광명소 중 하나인 밍산(名山)은 깊은 역사와 독특한 문화, 기묘한 전설, 아름다운 자연으로 수많은 국내외 여행객들을 신비로운 동양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사진/쉬쉰(徐訊)

충칭(重慶) 펑두(豐都)의 많은 민영기업들은 ‘만기방만촌(萬企幫萬村, 만개의 기업이 만개의 농촌을 돕는다)’이라는 이름의 빈곤탈출운동에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농촌 경제를 진작시키고 빈곤탈출과 함께 향촌(鄕村)진흥을 도움과 동시에 기업 자신의 고품질 발전까지 실현했다. 

펑두 주중톈(九重天)을 개발한 것 역시 한 민영기업이었다. 이 기업의 천궈하이(陳國海) 사장은 관광지구에 특별한 ‘가족’들이 있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나의 ‘가난한 가족’이라고 했었지만 지금은 ‘가난’이라는 글자가 빠졌다.” 천궈하이의 말이다. 

도로 확장 공사에 더해 연일 계속된 비 탓에 펑두현 솽루(雙路)진 롄화(蓮花)산 주중톈을 찾는 관광객은 몇 되지 않았다. 솽루진의 롄화둥(蓮花洞)촌 6조와 안닝창(安寧場)촌 4조는 주중톈 내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롄화둥촌은 현급 극빈촌이고, 안닝창촌 4조는 2018년 말 빈곤상태에서 벗어났다. 

주중톈 롄톈(連天) 잔도 관광지구는 안닝창촌 4조에 건설되었다. 이곳에 사는 83세의 뤄차오루(羅朝祿)는 하루도 빠짐 없이 3500m의 유리잔도를 10여 번씩 왕복한다. 이렇게 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정신도 맑아진다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관광객이 적기 때문에 잔도를 건너가 관광지구 입구에서 농산물을 팔지 않는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 전날 밭에서 캐온 감자를 분리한다. 

주중톈은 2015년 12월 착공해 2017년 7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관광지구에서 농산물을 팔거나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관광지구에서 사는 가난한 주민들은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났다. 


주중톈 관광지구의 유리 잔도   사진/ 마리

천 사장과 그의 빈곤했던 가족들 
옆집의 이웃이 뤄차오루에게 전해주었다. 관광지구 천궈하이 사장이 곧 집으로 찾아갈 테니 외출하지 말라고. 뤄자오는 서둘러 하던 일을 멈추고 미끄러운 돌계단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한달음에 마을 어귀로 마중을 나갔다. 

잎담배를 두어 모금 피었을 때, 검은색 지프차 한 대가 뤄차오루 집 앞에 멈춰 섰다. 주중톈의 천궈하이 사장이었다. “날씨도 안 좋은데 이렇게 직접 오시다니요. 볼 것도 없는 집인데요.” 대답도 듣지 않고 뤄차오루는 천궈하이의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뤄차오루 집 마당은 천궈하이가 연초에 선물했던 시멘트로 땅을 다진 것이었다. “비가 와도 이제는 두 발이 진흙투성이가 될 일이 없어요.” 노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집 한쪽에 쌓여있는 감자를 본 천궈하이는 전부를 사겠다고 했지만, 뜻밖에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팔만한 것이 아닌 것을 팔면 제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어르신은 아주 완강하신 분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을 귀찮게하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천궈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마을 상황에 대해 듣고 있을 때, 뤄차오루가 천궈하이를 데리고 집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침대 머리맡의 휘장 꼭대기에서 비닐봉투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봉투 안에는 100위안(약 17000원) 짜리 몇 장과 은행 예금증서가 들어 있었다. 뤄차오루의 허락을 구한 천궈하이가 2층으로 올라오라며 1층에 있던 기자를 불렀다. 뤄차오루는 꾸깃꾸깃해진 100위안짜리 지폐를 든 채로 말했다. “이 돈은 올해 농산물을 팔아서 번 돈이다. 모두 8000위안이다. 며칠 전에는 딸에게 3000위안을 따로 주었고, 아내가 현성(縣城, 현 정부 소재지)에 갈때 1000위안을 챙기기도 했다. 상반기에만 1만2000위안을 벌었다.” 

천궈하이는 뤄차오루 손에 들려 있던 예금증서를 건네 받았다. 대충 보니 현금만 7만 위안 넘게 들어있는 예금증서였다. “모두 지난 2년간 관광지구 입구에서 번 돈입니다. 우리 뤄씨 3대 모두 모두 천 사장님께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요.” 뤄차오루의 마지막 말에 천궈하이는 소리 내 웃었다.  

“어르신은 나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 자식들에게도 안 보여주는 돈이나 예금증서를 내게는 보여주신다.” ‘가난한’ 가족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관광구역에서 돈을 벌고 더욱 나아진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천궈하이는 큰 보람을 느낀다. 

천궈하이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랴오장룽(오른쪽 첫 번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 마리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46세의 랴오장룽(廖長榮)은 주중톈에서 체험형 민박집을 운영하며 1년에 20만 위안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다. “관광지구에 고맙고, 천 사장께 감사드린다.” 소박하면서도 건실한 랴오장룽은 롄화둥촌 주민이다. 일찍이 부부 두 사람 각각 타지에서 일하다가 2015년 8월 관광지구로 돌아와 일거리를 찾았다. 지금의 생활에 대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하는 랴오장룽이다.

랴오장룽 일가가 하루 빨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천궈하이는 2017년 랴오장룽에게 관광지구에 민박집을 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 당초의 투자금은 이미 회수했다. 평소에는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랴오장룽은 천궈하이를 도와 관광지구를 관리하고 있고, 천 사장은 랴오장룽에게 매월 3000위안의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관광지구 내의 가난한 주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무조건 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천궈하이는 호텔 관리 및 요식업 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을 자주 초빙해 민박집을 운영 중인 가난한 주민들에게 경영관리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또한, 두 개 마을 주민들과 푸링(涪陵)·충칭 등 농촌관광으로 유명한 곳을 다니며 그곳의 경험을 배움과 동시에 안목을 넓힐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탈빈치부(脫貧致富,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짐)’ 관념을 전파하며 빈곤탈출에 대한 모두의 자신감과 결심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관광지구의 도움과 지원 하에 롄화둥촌 6조의 7개 가구는 빈곤가구로 정식 등록했고, 안닝창촌 4조 15개 가구는 빈곤가구로 등록한 이후 잇따라 빈곤탈피를 실현했다. 이는 또한 직간접적으로 주변 마을 수 천 가구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옛말이 된 ‘먹고 사는’ 걱정
안닝창촌 4조의 빈곤가구 주민인 친다리(秦大禮) 부부는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늘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관광지구의 도움과 지원 덕에 지금은 가난에서 벗어났다. 

관광지구 개발이 마을과 자신의 삶에 가져온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50세를 넘긴 친다리의 눈가는 촉촉해지곤 한다. “천 사장이 길을 깔아주지 않았더라면, 관광구 개발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겐 그 어떤 출구도 없었을 것이다!” 친다리에 따르면 마을에서 시내까지의 거리는 25km로, 과거에는 7-8시간을 걸어가야 했지만 지금은 30여 분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관광지구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니 이전 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과거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픈 것이었다. 도로가 깔리기 전에는 중병에 걸렸어도 병원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산골마을에서 그대로 세상을 떠나야 했었다. “지금은 120에 전화 한 통만 하면 금세 환자를 병원까지 데려다 준다.” 친다리의 말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친다리 부부는 체력을 쓰는 일은 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시내에서 채소와 과일 따위를 팔았었는데, 매일 새벽 3-4시면 일어나 횃불과 손전등을 들고 산을 내려가 한밤중이 돼서야 산골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먹고 사는 게 참 고달팠다!” 

관광지구 개발 후 친다리는 관광지구로 출근하게 되었다. 매월 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 집에서 기르는 토종닭과 꿀·채소 등을 관광객들에게 팔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월 급여와 농산품 판매 수입으로 매년 4만 위안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에 사는 사람들이라 크게 돈 쓸 일 일은 없고, 먹고 사는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에는 오래된 집을 새롭게 단장했고, 지금은 도시에서 일하는 아들을 불러들여 온 가족이 함께 민박집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 
주중톈 관광지구는 마을 주민들에게 토지와 임지(林地)로 지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주민들은 자연스레 ‘주주’가 되었다. 

천궈하이에 따르면 관광지구는 토지 거래 4년 전에 토지의 경우 1무(亩) 당 400위안, 임지의 경우 1무당 100위안 기준으로 주민들에게 임대료를 지불했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최저 소득을 보장했다. 5년째 되던 해부터는 입장료 판매수입의 20%를 배당금으로 지급함으로써 주민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현재 현지 주민들 대다수, 각 가구당 1명 꼴로 관광지구에서 기초노동 등을 통해 고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나머지 주민들은 계절변화와 노동력 수요에 따라 언제든지 임시직으로 일할 수 있으며, 매일 60-80위안의 급여를 받는다. 2개 마을의 잉여노동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우스갯소리로 그들을 나의 ‘가난한 가족’들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가난’이라는 글자가 빠졌다.” 천궈하이가 당초 이곳을 투자지로 선택했던 것은 이곳 주민들의 소박함과 선량함·인내심·인간미 때문이었다. 천궈하이는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친 가족처럼 대했고, 2년 여의 시간 동안 도움을 주고 받으며 천궈하이와 ‘가족’ 간의 정은 더욱 깊어졌다. 

천궈하이는 앞으로도 관광지구의 관광프로그램을 완비하며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청·장년들을 불러들여 그들이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고 할 일을 하며 부모님과 자녀들을 돌볼 수 있게끔 할 것이다. “노인들은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고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집이 더욱 집다워지는 것이다!” ‘가난한’ 가족들의 삶이 더욱 나아지는 것, 천궈하이의 가장 큰 바람이다.


글| 마리(m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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